전통희귀음식

일제강점기에도 지켜낸 조선의 비밀 레시피

키보드사냥꾼 2025. 5. 29. 10:06

1. 한식의 정체성을 지킨 조선의 밥상 — 전통 음식 보존

일제강점기(1910~1945)는 단순한 정치적 억압을 넘어, 조선인의 생활문화와 정체성마저 뿌리째 흔들었던 시기였다. 일본은 조선인의 문화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으며, 그중 하나가 한식의 일본식화였다. 특히 학교 급식, 군대 식사, 공공 식당에서 일본식 음식이 강제되었고, 된장국 대신 미소시루, 쌀밥 대신 잡곡밥을 먹도록 하는 등 식습관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조선의 어머니들은 가정에서 전해 내려온 조선의 밥상과 조리법을 끝끝내 지켜냈다. 된장과 간장을 직접 담그고, 고추장을 땅속 장독대에 묻어 발효시키며, 비록 재료는 부족했지만 조리법은 타협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음식 보존이 아니라, 문화와 민족성의 저항이자 생존 방식이었다.

2. 암암리에 이어진 비밀 반찬들 — 비밀 레시피와 기록

일제는 조선인의 고유 식문화를 지우기 위해 식생활 기록조차 금지하기도 했다. 특히 양반가나 궁중 출신 요리사들이 전해 내려오던 고급 요리법은 '불필요한 사치'로 규정되어 폐기되거나 금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선비 집안이나 종갓집 여성들은 구전으로, 혹은 자신만의 손글씨로 조선의 레시피를 기록해 남겼다. 이러한 기록은 현대에 ‘조선요리제법’,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등의 전통 요리책 복원 작업에 결정적인 기초 자료가 되었다. 당시 대표적인 비밀 반찬으로는 제육편포(제육을 말려 만든 고급 반찬), 삼색 나물 무침, 송화버섯 장아찌, 약초 떡갈비 등이 있었고, 이는 일본 관리들의 감시를 피해 행랑채나 안방 깊은 곳에서 소수만이 나누어 먹던 귀중한 음식이었다. 이들은 곧 조선인의 자존심이자 가족 단위의 문화 전승이 되었다.

3. 사찰음식으로 이어진 조선의 채식 조리법 — 불교 전통 음식의 생존

일제강점기 동안 많은 불교 사찰은 탄압을 받았지만, 동시에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었기에 조선 고유의 채식 조리법을 상대적으로 더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부터 이어지던 사찰음식 전통은, 육류와 해산물 없이도 깊은 맛을 내는 기법, 약초와 산나물을 활용한 조리법, 계절의 흐름에 따라 구성된 식단 등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일제에 의한 농산물 수탈로 인해 민간에서는 사찰음식에서 사용하는 재료인 도토리묵, 취나물, 곰취, 고사리, 들깨, 표고버섯 등이 일반 식탁에도 오르게 되었고, 이는 조선인의 생존을 도우며 전통을 잇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이 시기 사찰에서는 『수운잡방』 같은 고문헌의 내용을 참고하거나 승려들 사이에 구전되어 내려오던 조리법을 바탕으로 음식을 만들었고, 이는 오늘날의 약선음식과 비건 한식의 기틀이 되었다.

4. 현대에 다시 빛을 본 조선의 비밀 요리 — 문화유산의 재발견

광복 이후 조선의 전통 요리는 점차 대중의 관심 속에서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한식 세계화 바람과 함께, 일제강점기에도 지켜졌던 비밀 레시피들이 복원되며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의 종로, 전주의 한옥마을, 안동과 경주의 고택 등에서는 과거의 종갓집 음식을 복원해 전시하거나, 체험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복원 음식으로는 약식궁중편육, 삼합김치, 전통 장아찌 12첩, 생강즙 떡갈비, 쌍화죽 등이 있다. 특히 문화재청과 한식진흥원이 공동 기획한 ‘전통 음식 기록 복원 프로젝트’는 구술자료, 손글씨 레시피, 장독대에서 발굴한 발효 샘플 등을 바탕으로 잊힌 요리법을 되살려 내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단순한 맛의 복원이 아닌, 역사 속 정체성과 저항의 흔적을 되새기는 문화적 재탄생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지켜낸 조선의 비밀 레시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