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희귀음식

한약재와 섞어 끓인 전통 술밥 ‘주악’의 모든 것

키보드사냥꾼 2025. 6. 3. 10:26

1. 조선의 궁중에서 탄생한 술밥, ‘주악’의 기원과 정의

전통 술밥 주악은 단순한 후식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궁중과 양반가에서 특별한 날에 오르던 **‘주악(酒餌)’**은 찹쌀가루 반죽을 기름에 지진 뒤, 한약재를 넣은 꿀물이나 술물에 넣어 끓인 후식 혹은 간식이다. 일반적으로 떡이나 튀김류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주악은 그 자체로 발효와 약효가 결합된 전통 음식이다. ‘술밥’이라는 명칭은 찹쌀반죽이 술에 절여진 상태를 의미하며, 당시에 술을 하나의 조리 매개로 활용한 독특한 조리법이기도 했다. 주악은 단순한 간식이 아닌, 특별한 잔칫날이나 손님 접대, 병후 회복식으로 활용되었으며, 음식을 통한 치료 개념이 깃든 전통 약선 음식이었다.


2. 찹쌀과 한약재, 그리고 술이 빚어낸 풍미의 조화

한약재와 술의 조화는 주악을 일반적인 튀김요리나 떡류와 명확히 구분 짓는다. 주악의 기본 재료는 찹쌀가루이며, 반죽을 한입 크기로 빚은 뒤 기름에 튀겨낸다. 이때 튀겨낸 주악을 담그는 술물은 단순한 청주가 아니라, 꿀 또는 조청에 계피, 생강, 감초, 정향, 숙지황, 백출 등 한약재를 섞어 달인 약탕에 술을 더한 것이다. 이 조합은 단순한 맛의 풍부함을 넘어, 체온을 따뜻하게 하고 소화를 돕는 효능까지 갖췄다. 특히 궁중에서는 병중의 왕이나 세자가 입맛을 되찾을 때 사용되기도 했으며, 한방에서 ‘기력을 복돋우는 간식’으로 활용되었다. 이처럼 주악은 의식주가 통합된 약선문화의 대표 음식이었다.


3. 주악의 다양한 지역 전승과 현대에서의 희귀성

‘주악’은 지역마다 다른 형태로 변주되어 전해졌는데, 특히 경기, 충청, 경상 지방에서 전승 사례가 발견된다. 경기지역에서는 왕실 레시피가 전해져 주로 계피와 생강을 기본으로 한 약탕에 담갔고, 경상도에서는 쑥이나 황기 같은 약재가 추가되기도 했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술 대신 식혜를 사용하는 변형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악의 조리법은 매우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전통 음식이기 때문에 현대에는 거의 사라진 상태다. 실제로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상류층 명절 음식 혹은 전통 예식에서 종종 등장했으나, 이후 점점 대중 식문화에서는 멀어졌다. 현재는 일부 한식 전문 조리인이나 궁중요리 복원가들에 의해 간헐적으로 재현될 뿐, 일상에서 맛볼 수 없는 희귀 음식이 되어버렸다.

한약재와 섞어 끓인 전통 술밥 ‘주악’의 모든 것


4. 전통 술밥 주악의 문화적 가치와 현대적 복원의 필요성

주악의 재조명은 단순한 음식 복원 차원을 넘는다. 한약재, 술, 찹쌀이라는 조합은 한국 전통 의학과 발효, 조리 기술의 결정체로, 현대의 웰빙 음식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기름에 튀긴 후 약탕에 담그는 이중 조리법은 손이 많이 가는 방식이지만, 그만큼 깊은 맛과 건강 기능성을 함께 추구한 조상의 지혜가 녹아 있다. 특히 면역력 강화, 위장 기능 향상, 혈액 순환 개선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성분들이 결합된 형태로, 전통 약선요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만하다.

또한, ‘주악’이라는 이름 자체가 잊혀진 지금, 이 음식의 복원은 단순한 레시피 재현이 아니라 한민족 음식문화의 정체성 회복이라는 큰 의미를 갖는다. 조선시대의 음식 기록서인 『규합총서』나 『주찬』 등에서도 등장했던 주악은, 한국 전통 후식의 정점을 찍었던 메뉴 중 하나다. 앞으로 전통음식 복원과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 속에서, ‘술로 빚은 밥’이라는 유일무이한 음식인 주악이 재발견되길 기대해본다.


잊혀진 전통 속의 맛, ‘주악’을 다시 식탁 위에

‘한약재와 술이 만난 술밥, 주악’은 단순한 후식이 아닌 조선의 미식과 약선이 만난 결정체였다. 오늘날 그 흔적을 찾기 어려운 희귀 음식이 되었지만, 주악이 담고 있는 철학과 풍미는 현대의 어떤 요리보다 깊고 풍성하다. 건강을 위한 음식, 미각을 위한 음식, 그리고 문화를 위한 음식으로서, 주악은 지금 다시 복원되고 기억될 필요가 있다. 전통 음식은 단지 맛의 유산이 아닌, 우리 삶과 정신이 담긴 유산이기 때문이다.